경주역사유적지구(33)..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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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역사유적지구(33)..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 조성호 기자
  • 승인 2019.08.02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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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지구(IV : 반월성)

<석빙고>

현재 반월성터에는 아무런 건물도 남아 있지 않고 숲이 우거진데다 잔디만 잘 깔려 있는 공터이다. 세계유산이라고 지정된 곳임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없으므로 황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이를 역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소설가 강석경은 ‘비어있기에 상상력을 주는 장소다’라고 산책길로 추천한다. 사실 월성은 경주의 시민공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지만 마냥 허허벌판만은 아니다. 조선조 영조 때 옮겨 놓은 석빙고가 유일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삼국유사』에 유리왕 즉위 후(24년) 얼음창고(장빙고)와 수레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삼국사기』에 ‘지증왕 6년(505)에 처음으로 얼음을 저장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들 기록을 보면 월성 어딘가에 석빙고가 존재했을 것이므로 조선시대에 축조한 경주 석빙고는 신라 때 만든 것을 재건축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하지만 이 문제는 보다 많은 연구로 확인될 것으로 본다. 한국의 수많은 유산 중에서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과학적인 것을 골라 보라면 석빙고를 들고 싶다. 현대인들의 기본 가전제품인 냉장고는 얼음이나 냉기를 인공적으로 만드는 기계장치이지만 석빙고는 자연의 순리에 따라 겨울에 채집해 두었던 얼음을 봄, 여름, 가을까지 녹지 않게 효과적으로 보관하는 냉동 창고이다.

석빙고는 외견상 고분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빙실이라는 공간이 주변 지반과 비교하여 절반은 지하에 있고 나머지 절반은 지상에 있는 구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단순한 형태의 빙고를 보고 단지 얼음을 저장하기만 하는 단순한 시설로 보이므로 이게 무슨 대단한 과학이 들어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더구나 사막 지대인 이집트나 일부 중동 지역에서 한여름에 기계 시설 없이도 얼음을 만들어 먹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석빙고에 대해 더욱 평가 절하하게 마련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사막에서 어떻게 얼음을 만들 수 있었는지 알아보자. 이집트인들은 추운 날 밤(기온은 그래도 영상) 흙으로 빚은 용기 안에 물을 넣어두고 바깥 표면을 계속 적셔준다. 그러면 물의 기화 작용으로 용기가 냉각되어 안에 있는 물은 얼음이 된다. 사막은 낮 밤의 온도차가 크기 때문이다. 사막 지역에서는 하루에 제곱미터 당 최소한 5∼6kg의 얼음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얼음을 필요에 따라 사용하는 것은 한국의 기술이 더욱 효율적이다. 사막지대에서도 항상 얼음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얼음을 만들 수 있을 만큼 일사량이 높다고 하더라도 이들 열을 순식간에 증발시킬 수 있을 만한 조건의 기후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들 사막지방에서는 그날그날의 기후 조건에 따라 피동적으로 얼음을 만드는 것이 고작이었다.

석빙고의 우수성은 가정의 필수품이라는 냉장고의 예를 보면 알 수 있다. 어린아이들이 많은 집에서 부모가 항상 하는 말은 냉장고를 열면 항상 문을 꼭 닫으라고 한다. 아무리 냉동고에 아이스크림이나 얼음을 꽉 채워 놓더라도 냉장고문이 조금만 열려 있다면 몇 시간 내에 모두 녹아버린다. 그런데 석빙고는 겨울에 얼음을 캐어 기계적인 장치 없이 다음해 가을까지 얼음을 저장할 수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석빙고가 얼마나 우수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얼음의 용도가 반드시 음식 저장 같은 실용적인 측면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얼음을 보관했다가 여름에 사용함으로 여름철에 극성하는 양기(陽氣)를 억제하여 자연의 조화를 회복시켜 보겠다는 동양철학적인 발상도 큰 몫을 했다. 그러므로 겨울이 춥지 않아 얼음이 얼지 않으면 동빙고의 북쪽에 있었던 사한단(司寒壇)에서 얼음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기한제(祈寒祭)를 지냈다. 기한제를 지냈더니 날씨가 추워져 얼음을 채취할 수 있었다고 제관이 상을 받기도 하였다. 얼음은 고대에서 매우 진귀한 물품이었다. 문종 3년(1049) 매년 6월부터 8월초까지 벼슬에서 물러난 공신들에게 3일에 두차례씩, 좌‧복시, 육부상서 등의 고급 관리들에게는 일 주일에 한 차례씩 나누어주도록 제도화했다. 그러나 18세기 영정조 시대 이후 물동량이 많아지자 한강변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서 생선 보관용 얼음을 공급하던 사설 빙고도 존재했다. 빙고는 고을의 규모에 따라 크기가 정해지나 대부분 30평이 넘었고 규모가 적은 경우에도 10평이 넘었다. 현존하는 빙고의 빙실은 폭은 대개 4~6미터, 길이는 폭의 2~4배 정도이다. 빙고에 저장하는 얼음은 두께가 12센티미터 이상이 되어야만 했다.

석빙고의 부위별 구조는 여름철까지 냉기를 잘 보관할 수 있도록, 자연 환기구의 적절한 배치, 유선형의 외부형태, 배수구의 이용, 흙과 돌의 열 전도율의 차이를 이용한 축열 구조의 채택 등을 통해 더운 외기의 영향을 최소로 줄일 수 있는 내ㆍ외부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석빙고의 위치도 중요하다. 석빙고의 위치는 외기온에 영향을 받지 않는 절묘한 천연적 지형에 설치하였음은 물론이다. 빙고의 바닥은, 흙다짐이나 그 위에 넓은 돌을 깔아 놓았고 바닥을 경사지게 만들어 얼음이 녹아서 생긴 물이 자연적으로 배수되게 하였다. 빙고 구조에서 가장 특징적인 요소는 빙실 천장을 아치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이 형식은 전체를 아치로 만든 구름다리나 성문들과는 달리 일정 간격으로 세우고 이를 구조재로 하여 그 사이를 석재로 쌓거나 판석을 얹은 것이다. 석재는 화강석으로 규격은 대체로 0.5톤 정도이다. 또한 냉기에 의한 전열 면적과 공기 체적을 가능한 한 많이 확보하기 위해 천장에는 요철이 있었다. 아치 구조로 빙실을 만들면 기둥이 없으므로 얼음을 취급하는데 편리하다.

천장에는 빙실 규모에 따라 환기 구멍을 만들었다. 이러한 환기공은 봉토 밖으로 나오게 하여 그 위에 환기공보다 큰 개석을 얹어 빗물이나 직사광선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였다. 환기공은 대체로 30×30센티미터로 2~3개가 일반적이다. 출입문은 특정한 규칙이 없지만 보통 바깥 지반보다 낮은 위치에 설치하였다. 출입문의 크기도 얼음의 출납에 지장이 없을 정도의 크기로 출입구를 통한 열 손실이 최소화되도록 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빙고 건축 때 철물과 회를 많이 사용하였는데 철물은 석재와 석재 사이가 서로 분리되지 않도록 삽입하였고 회를 많이 사용한 것은 봉토 조성 때 진흙과 함께 혼합하여 외부에서 물이라든가 습기가 침입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한 용도였다.

경주 월성 지구의 석빙고는 빙실의 규모가 35평 정도로 남한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길이 19미터, 너비 6미터, 높이 5.4미터의 규모로 입구가 월성 안쪽으로 나 있고 계단이 있다. 천장은 아치형으로 다섯 개의 기둥에 장대석이 걸쳐져 있고, 환기용 구멍 3개가 장대석을 걸친 곳에 있으며 바닥 한가운데가 경사지게 되어 있어 녹은 물이 밖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석빙고에 저장된 겨울철의 얼음이 한 여름에도 사용될 수 있을 만큼 효율적이었을까?

계명대학교의 공성훈 박사는 석빙고의 실내 환경 분포를 측정했다. 실험 결과 석빙고는 비교적 날씨가 따뜻한 경우 실내 온도 조건의 분포 범위는 평균 19.8도로 온도교차 범위는 1.3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실외의 온도 교차 범위는 8.2도로서 이와 같이 실내 온도 교차 범위가 낮은 것은 장기적인 얼음 보관을 위한 석빙고 외부 구조체의 축열 성능과 잔디 식재에 의한 복사열의 효율적인 산란 작용 등에 의한다고 추정되었다. 장동순 교수는 석빙고가 반지하 냉동 창고의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경주 석빙고의 메커니즘을 분석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은 정말로 석빙고가 겨울에 얼음을 캐내어 여름까지 저장할 수 있느냐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우선 얼음이 50%와 100% 석빙고에 채워져 있을 때와 단열재로 볏짚이나 갈대를 사용했을 때 계산 결과를 분석하는 것이다.

시뮬레이션 결과는 매우 놀라웠다. 얼음의 충진량이 50%인 경우 짚이 없을 때는 석 달 후에 얼음량의 감소가 6.4%, 여섯 달 후에는 38.4%가 되는 반면에 짚이 있을 경우 석 달 후의 얼음량 감소는 0.04%, 여섯 달 후에는 0.4%에 불과하였다. 반면에 얼음의 충진량이 100%인 경우 짚이 없을 때는 석 달 후에 얼음량의 감소가 9.2%, 여섯 달 후에는 51.8%로 절반 이상이 감소한 반면에 짚이 있을 경우 석달 후의 얼음량 감소는 2.8%, 여섯 달 후에는 18.4%나 되었다. 얼음의 양과 볏짚의 유무에 따라 얼음의 저장 능력을 조절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였다.

여기에서 볏짚의 역할인 단열재란 열을 전달하지 않는 재료로서 그 원리는 재료가 비어있는 공간을 많이 갖도록 한 것이다. 현대 건축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는 스티로폴(k:0.03W/m°C)이나 우레탄은 미세한 공기구멍을 되도록 많이 포함하여 열을 차단하고 있다. 석빙고에서 사용한 볏짚도 속이 비어 있는데다 재료 자체가 열을 잘 통과하지 않으므로 외기 온도에 의해 얼음이 녹지 않는 단열재 역할을 한 것이다. 단순하게 얼음을 짚으로 덮는 것으로 보이는 석빙고가 어떤 기계적인 장치에 비견하여 결코 떨어지는 과학적 기술이 아님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석빙고와 같은 시설을 만들어 여름에 항상 얼음을 먹을 수 있도록 만든 것은 세계적으로 거의 유례가 없다는 것을 부연하면 우리 조상들의 슬기에 으쓱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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