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목평화동지회 이동안 회장의 끝나지 않은 애국심 이야기

잊혀진 영웅들, 북파공작원들의 애국정신 잇다 자유를 위한 숨겨진 희생, 북파공작원의 이야기

2024-11-13     이승재 기자


청목평화동지회 이동안 회장은 국가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삶이었다. 어린 나이에 공작원이 되어 극한의 훈련과 임무를 수행했던 그는, 전역 후에도 애국심을 잊지 않고 동지들과 함께 청목평화동지회를 설립했다. 그는 국가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던 서러움 속에서도 국가의 안보를 위해 헌신했고 지금도 그러하고고 있다. 오늘날에도 그는 국군 장병들을 위로하고, 자유와 안보의 가치를 후대에 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 중이다. 그의 인생은 애국심, 신앙, 그리고 동지애로 점철된 삶이다. 이동안 청목평화동지회 회장은 젊은 시절, 국가의 부름을 받고 북파공작원으로서 목숨을 건 임무를 수행했다. 그의 인생은 그 누구보다 헌신과 애국심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가 걸어온 길은 여전히 뜨거운 애국심으로 채워져 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그가 어떻게 북파공작원이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겪은 희생과 고난, 그리고 오늘날 청목평화동지회를 이끄는 리더로서의 그의 역할을 들어보았다.

 

 

16세의 태권소년 북파공작원이 되다

이동안 회장은 중학교 3학년 때, 태권도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딸 정도로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가진 소년이었다. 운동에 재능을 보였던 그는 중앙정보부의 눈에 띄었고, 그들이 제시한 사명에 의해 북파공작원으로 발탁되었다. 그 당시 북파공작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알지 못했으나, 그는 영웅이 되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그 길을 선택했다.
이 회장은 “저는 그때 너무 어렸고, 무엇을 선택하는지조차 잘 몰랐습니다. 다만 나라를 위해 뭔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저를 이끌었죠. 하지만 그 선택은 매우 큰 책임을 수반했습니다. 책과 연필 대신 총과 수류탄을 들고, 20kg의 모래 배낭을 메고 달리던 날들이 시작된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선택한 길이 단순한 영웅의 길이 아니라, 목숨을 건 임무라는 사실을 점차 깨닫게 되었다. 훈련은 상상을 초월했다. 낮에는 투검 던지기와 독도법을 배우고, 밤에는 산악 행군을 하며 탈출 및 도피 훈련을 받았다. 이 회장은 “하루하루가 생존을 위한 훈련이었고, 그는 ‘인간 병기’로 거듭나기 위해 매일 극한의 한계를 넘나들었다”며 “영화 실미도에서 표현된 공작원들의 훈련이 현실의 절반에 불과할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우리는 목숨을 걸고 매 순간 훈련에 임해야 했다”고 말했다.

 

 

임무와 희생... 그리고 애국
이동안 회장의 임무는 단순하지 않았다. 시설 폭파, 요인 납치, 암살, 정보 탈취 등 북파공작원이 수행해야 하는 임무는 매우 다양했다. 명령이 떨어지면 언제든 임무를 수행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임무의 비밀성으로 인해 그는 당시의 구체적인 사건에 대해 말할 수 없었지만, 매 순간이 긴장과 고통의 연속이었다고 전했다.
이 회장은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애국'이라는 마음이 저를 지탱해 주었습니다. 훈련을 통해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단련되었고, 임무 수행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결심이 들었습니다. 동지들을 떠올리며 힘들 때마다 버텨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의 말 속에서 느껴지는 애국심은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결심을 했고, 그 결심이 그를 지탱해 주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많은 동지들이 희생되었고, 그가 감당해야 할 책임은 더 무거워졌다.

 

 

청목평화동지회의 창설과 운영
북파공작원으로서 국가를 위해 헌신한 이동안 회장은 전역 후에도 여전히 조국에 대한 애국심을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동료들은 국가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서러움을 겪었다. 북파공작원의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고, 그들의 희생은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다. 그런 서러움 속에서도 그는 동지들과 함께 청목평화동지회를 창설하기로 결심했다.
2015년, 그는 동지들과 함께 청목평화동지회를 설립했다. 청목평화동지회는 그와 같은 북파공작원들이 모여, 서로의 희생을 기리고 존중하며 살아가기 위해 설립된 단체다. 국가는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으나, 그들은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다. 이동안 회장은 “우리는 목숨을 걸고 조국을 위해 싸웠다. 그 사실을 잊지 않고 서로 돕고 존중하며 살아가고자 이 단체를 만들었다”고 전했다.
운영에 대한 질문에 이 회장은 “청목평화동지회는 그 어떤 수익 창출 사업도 하지 않는다”며 “오직 국가 안보를 위한 안보 강연과 국군 장병들을 위한 위문 공연을 해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활동하지 않습니다. 우리 청목회는 그저 애국정신을 전하고, 후손들에게 그 가치를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현재 청목평화동지회는 국군 장병들을 위한 위문 공연과 제소자들을 위한 교화 활동 등을 이어가고 있으며, 이동안 회장은 이러한 활동을 통해 북파공작원 출신들의 애국정신을 알리고 있다.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한 이들의 숭고한 정신을 후대에 전달하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봉사
이동안 회장은 자신의 신앙이 그에게 큰 힘이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북파공작원 시절, 생사의 갈림길에 있을 때마다 그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그 기도가 응답되었다는 믿음이 그를 오늘날까지 이끌어왔다. 그는 크리스천이자 교회 장로로서 봉사 활동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청목평화동지회 활동에 헌신하고 있다.
이 회장은 "북파공작원으로서도, 지금의 삶에서도 하나님은 저에게 힘과 은혜를 주셨습니다.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다하며,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해 나갈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이동안 회장은 후손들에게 자유와 안보의 중요성을 전하고자 한다. 그는 오늘날의 젊은 세대가 자유의 소중함을 잊지 말고, 그 자유를 위해 싸웠던 사람들의 희생을 기억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 회장은 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니라며  나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바쳤다는 것을 절대로 잊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동안 회장은 오늘도, 내일도 조국과 민족을 위해 헌신하며, 그의 동지들과 함께 청목평화동지회를 통해 국가를 위한 봉사를 이어갈 것이다. 그의 인생은 애국, 신앙, 그리고 봉사로 가득 차 있으며,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 정신을 잃지 않고 살아갈 것이다.